2025-09-20
TMac in Orlando

오프시즌의 지각변동: 두 슈퍼스타의 운명과 한 수비수의 탄생

2000년 오프시즌은 리그의 판도를 뒤흔드는 대형 이적들로 요동쳤습니다. 특히 올랜도 매직이 단행한 두 건의 슈퍼스타 영입은 팀의 미래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의 서사를 극적으로 바꾸는 나비 효과를 낳았습니다. 매직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에이스 그랜트 힐을 척키 앳킨스, 벤 월러스와 트레이드하며 영입했고, 토론토 랩터스에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T-Mac)를 데려왔습니다. T-Mac은 당시 빈스 카터의 그늘에 가려진 자신의 역할에 불만을 품고 고향인 플로리다로 돌아와 힐과 함께 뛰기를 원했습니다. 이들의 합류는 힐과 T-Mac이라는 당대 최고의 젊은 포워드 듀오를 결성하여 매직을 강력한 우승 후보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시작부터 비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랜트 힐은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인해 단 47경기만 뛰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이 부상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그의 전 소속팀인 디트로이트 구단이 부상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사야 토마스 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통을 참고 뛰는” 문화가 선수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한 결과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힐은 자신의 발이 마치 ‘불에 타는 것 같다’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팀 문화 때문에 경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로 인해 힐은 이후 몇 년간 선수 생활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힐의 부상은 예상치 못한 반전의 시작이었습니다. 강력한 듀오 플레이를 기대했던 매직의 계획은 전면 수정되었고, 모든 부담은 이제 막 21세가 된 T-Mac의 어깨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T-Mac은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경이로운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는 평균 26.8점을 기록하며 올스타에 처음 선정되었고, 그 시즌 기량발전상(MIP)을 수상하며 리그의 새로운 슈퍼스타로 도약했습니다. 그의 플레이는 ‘올스타전 백보드 앨리웁’ 같은 하이라이트를 생산하며 젊은 세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편, 이 트레이드의 반대급부로 디트로이트에 합류한 무명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랜트 힐을 내주고 데려온 벤 월러스는 당시만 해도 언드래프티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고, 뚜렷한 기대는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월러스는 곧 피스톤스 수비의 심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그 시즌 정규 리그 전체 리바운드 1위를 기록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했습니다. 월러스는 스스로 “나는 득점하는 데 압박을 느끼지 않았다. 내 공격은 상대팀이 득점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라고 말하며 그의 철학을 밝혔습니다. 그의 에너지와 민첩성은 언더사이즈 센터라는 약점을 상쇄했고, 이는 피스톤스 팀이 수비 중심의 팀 정체성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올랜도 매직의 실패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훗날 우승(2004년)이라는 극명하게 엇갈린 두 가지 운명을 만들어낸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외의 오프시즌 사건으로는, 밴쿠버 그리즐리스가 멤피스로 연고지를 이전하기로 결정한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약화된 캐나다 달러, 현지 소유주의 부재, 그리고 일부 선수들이 캐나다에 사는 것을 꺼려했던 복합적인 이유가 얽혀 있었던 사건으로, NBA가 거대한 시장을 찾아 북미 대륙을 유랑하는 사업적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한 2000년 드래프트에서는 켄욘 마틴(1순위)과 마이크 밀러(신인상) 등 젊은 유망주들이 리그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동부의 투쟁과 아이버슨의 시즌: ‘미운 오리’의 강철 방패

2000-2001 시즌 동부 컨퍼런스는 서부와 달리 절대적인 강자가 부재한 혼전 양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 76ers는 그들의 독특한 정체성으로 리그의 정상에 섰습니다. 래리 브라운 감독이 이끄는 76ers는 56승 26패로 동부 컨퍼런스 1위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76ers의 핵심은 단연 ‘수비’였습니다. 래리 브라운 감독은 필드골 성공률, 리바운드, 그리고 턴오버를 승리의 핵심 지표로 강조했습니다. 그는 “수비가 곧 공격”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셸 디펜스’를 매일 훈련시켰으며, 코트 위 모든 선수들에게 강한 볼 압박을 주문했습니다. 이는 당시 NBA의 흐름을 거스르는 극단적인 수비 중심의 전략이었습니다. 브라운 감독은 상대팀 공격을 방해하고(disrupt), 외곽에서 볼을 강하게 압박하며 상대 공격수를 드라이버로 만들어 패스길을 차단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의 공격 지표는 리그 하위권이었습니다. 76ers는 평균 94.7점으로 리그 전체 29개 팀 중 8번째로 낮은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방패는 리그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76ers의 평균 실점은 90.4점으로 리그 최저를 기록했으며, 이는 그들의 강력한 수비가 어떻게 승리를 쌓아갔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낮은 득점과 낮은 실점은 현대 농구가 공격 효율성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2000년대 초반에는 극단적인 수비 중심의 팀도 충분히 정규 시즌을 지배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아래 표는 2000-2001 시즌 주요 팀들의 공수 효율성 지표를 비교하여, 당시의 전술적 경향을 숫자로 뒷받침합니다.

2000-2001 NBA 시즌 주요 팀 공수 효율성 지표 (정규 시즌)

평균 득점 (PS/G)평균 실점 (PA/G)
필라델피아 76ers562694.7 (22위)90.4 (1위)
LA 레이커스5626100.6 (3위)97.2 (19위)
새크라멘토 킹스5527101.7 (1위)95.9 (13위)
샌안토니오 스퍼스582496.2 (13위)88.4 (1위)
댈러스 매버릭스5329100.5 (4위)96.2 (14위)
밀워키 벅스5230100.7 (2위)96.9 (17위)

이 표는 76ers와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강력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상위권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반면, 새크라멘토 킹스와 댈러스 매버릭스, 밀워키 벅스는 높은 득점을 통해 승리를 쌓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당시 리그가 다양한 스타일의 전술이 공존하는 과도기였음을 시사합니다.

서부의 왕좌 게임: 지배하는 자와 도전하는 자들

서부 컨퍼런스는 동부와 달리 지배적인 팀과 그에 도전하는 여러 강호들의 구도가 뚜렷했습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58승 24패로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하며 팀 던컨을 중심으로 한 철옹성 같은 수비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주목받은 팀은 단연 디펜딩 챔피언 LA 레이커스였습니다. 레이커스는 56승 26패로 서부 컨퍼런스 2위와 태평양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시즌 초반 데릭 피셔가 발 골절로 62경기를 결장하면서 고전하는 듯 했지만, 올스타전 이후 마지막 8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56승으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그들의 핵심은 필 잭슨 감독의 ‘트라이앵글 오펜스’와 코비-샤크 듀오의 조화였습니다. 텍스 윈터가 고안한 이 시스템은 코트의 한쪽 사이드라인에 센터, 포워드, 가드가 삼각형을 이루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 시스템은 선수 간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볼 배분을 강조하며, 코트의 공간을 최적으로 활용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처럼 압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이 ‘팀 시스템’ 안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득점왕 앨런 아이버슨의 고립형 공격 스타일과 대비되는데, 레이커스는 이 두 가지를 성공적으로 결합한 사례였습니다. 시스템은 스타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도구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서부에는 레이커스에 맞서는 매력적인 팀들이 있었습니다. 새크라멘토 킹스는 55승 27패로 서부 3위를 기록하며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릭 아델만 감독이 이끄는 킹스는 크리스 웨버를 중심으로 ‘프린스턴 오펜스’와 유사한 하이포스트 오펜스를 구사하며 아름다운 공격 농구를 선보였습니다. 그들의 공격은 일방적인 1대1 플레이가 아닌, 모든 선수들이 좋은 패스를 위해 자신의 좋은 슛 기회를 포기할 정도로 이타적이고 창의적이었습니다. 댈러스 매버릭스는 53승 29패를 기록하며 1989-90 시즌 이후 무려 10여 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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