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1
Shaq dunking on Spurs

1부: 거인들의 시대와 전술의 미학, 정규시즌

1998년 마이클 조던의 두 번째 은퇴는 농구계에 거대한 공백을 남겼습니다. 1999년의 직장 폐쇄 시즌(lockout season)이 혼란 속에 막을 내린 후, 1999-2000 NBA 시즌은 단순한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NBA는 조던이 남긴 왕좌를 차지할 새로운 왕을 찾고 있었고, 그 운명적인 여정의 시작은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였습니다.

1. 운명을 바꾼 세 가지 변화

젠 마스터의 부임과 불안한 공존의 시작

시카고 불스에서 6번의 우승을 이끈 전설적인 감독 필 잭슨이 LA 레이커스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단순한 코치 변경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두 젊은 슈퍼스타의 충돌을 관리하고, 그들의 폭발적인 재능을 ‘트라이앵글 오펜스’라는 견고한 시스템에 녹여내기 위한 구단 프런트의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잭슨이 오닐과 코비의 복잡한 관계를 성공적으로 조율하지 못했다면, 레이커스 왕조의 시작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잭슨은 오닐에게 팀의 구심점이자 리더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는 한편 , 코비에게는 시스템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도록 요구했습니다. 코비가 시즌 초 손목 부상으로 15경기를 결장하면서 팀은 잭슨의 계획대로 오닐을 중심으로 한 시스템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두 슈퍼스타의 불안한 공존을 압도적인 시너지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경기장, 극명한 양극화의 상징

1999-2000 시즌은 레이커스와 클리퍼스가 새로 개장한 스테이플스 센터(현 Crypto.com Arena)를 공동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첫 시즌이기도 했습니다. 이 새로운 경기장은 당시 NBA의 극명한 양극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레이커스는 필 잭슨 체제 아래 정규 시즌 67승 15패라는 리그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왕조의 서막을 열었지만 , 같은 경기장을 쓰는 클리퍼스는 15승 67패로 리그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도시, 같은 홈구장임에도 한 팀은 역사상 손꼽히는 챔피언십 팀으로 등극했고, 다른 팀은 깊은 나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는 잭슨과 오닐, 코비라는 최고의 재료가 결합했을 때 만들어지는 시너지와, 그렇지 않은 팀 간의 현격한 힘의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였습니다.  

시대의 마지막 불꽃과 비극적인 사건들

이 시즌은 90년대 NBA를 수놓았던 스타들의 마지막을 목격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휴스턴 로키츠의 찰스 바클리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경기를 소화하며 코트를 떠났고 , 뉴욕 닉스의 영혼이었던 패트릭 유잉은 그의 닉스 마지막 시즌을 보냈습니다. 한편, 샬럿 호네츠의 바비 필스는 자동차 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으며 ,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센터 중 한 명이었던 윌트 체임벌린이 1999년 10월 세상을 떠나며 그의 등번호를 달고 뛰었던 팀들은 검은색 추모 패치를 달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잊혀서는 안 될 과거의 위대한 유산과 인간적인 비극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2. 리그를 지배한 슈퍼스타들의 위상

무소불위의 권력, 샤킬 오닐

1999-2000 시즌은 샤킬 오닐이 정점에 도달한 해였습니다. 그는 정규 시즌 MVP를 수상하며 , 경기당 29.7득점, 13.6리바운드, 3.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리그를 지배했습니다. 특히 이 MVP 투표에서 121표 중 120표를 얻어 만장일치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 이는 당시 NBA에서 빅맨이 차지했던 절대적인 위치와 오닐이 그 시대의 정점에 서 있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기록입니다. 그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으며, 상대 팀들이 그의 낮은 자유투 성공률을 노려 고의적으로 파울을 저지르는  

‘핵-어-샤크(Hack-a-Shaq)’ 전략이 등장한 것은 오닐의 압도적인 위력에 대한 전략적 항복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정규 시즌 LA 클리퍼스 전에서 기록한 61득점 23리바운드 경기는 윌트 체임벌린만이 달성했던 기록이었으며 , 이는 샤킬 오닐의 지배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완벽한 증거였습니다.  

끓어오르는 젊은 피, 코비 브라이언트

21세의 코비 브라이언트는 이 시즌 오닐의 파트너로서 눈부신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경기당 22.5득점을 기록하며 , 리그 최고의 가드로 인정받아 올-NBA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고 , 필 잭슨 감독이 원했던 팀의 ‘플로어 리더(floor leader)’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오닐과의 관계는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오닐은 팀 미팅에서 코비가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으며 , 코비 또한 잭슨의 비판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갈등은 단순한 팀원 간의 불화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포스트업 중심의 빅맨 시대’와 ‘미드레인지와 돌파를 구사하는 만능형 가드의 시대’ 사이의 충돌을 의미했습니다. 필 잭슨은 이러한 충돌을 트라이앵글 오펜스라는 시스템을 통해 관리했고, 이는 두 시대의 에이스들이 함께 성공하는 유일한 길을 제시했습니다.  

시대의 아이콘들

이 시즌은 오닐과 코비 외에도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여러 스타들의 존재를 각인시켰습니다.

  • 빈스 카터: 2000년 덩크 콘테스트에서 역대 최고의 덩크들을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한 그는 ‘절반은 인간, 절반은 경이로운(Half Man/Half Amazing)’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전 세계적인 인기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그의 덩크는 단순한 득점 기술이 아닌 예술이었으며, 토론토 랩터스가 프랜차이즈 역사상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앨런 아이버슨: 빈스 카터와 함께 가드 포지션의 스타 파워를 과시한 아이버슨은 경기당 28.4득점을 기록하며 올-NBA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습니다. 새크라멘토 킹스 전에서 기록한 50득점은 그의 폭발적인 공격력을 증명합니다.  
  • 케빈 가넷: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이끌고 50승을 달성한 케빈 가넷은 수많은 클러치 승부를 만들어냈으며 , 올해의 수비수(Defensive Player of the Year)는 강력한 수비력의 센터 알론조 모닝에게 돌아갔습니다.  
1999-2000 NBA 주요 수상 내역  
정규시즌 MVP: 샤킬 오닐 (LA 레이커스)
파이널 MVP: 샤킬 오닐 (LA 레이커스)
신인왕: 엘튼 브랜드 (시카고 불스), 스티브 프랜시스 (휴스턴 로키츠)
올해의 수비수: 알론조 모닝 (마이애미 히트)
기량 발전상: 제일런 로즈 (인디애나 페이서스)
올해의 감독: 닥 리버스 (올랜도 매직)

3. 전략의 시대: 느림의 미학, 포스트업의 정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NBA는 느린 페이스의 경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1999-2000 시즌의 평균 포제션은 90.1회에 불과했는데 , 이는 오늘날의 경기 속도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입니다. 이 낮은 포제션은 단순히 경기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농구 전략이 ‘효율적인 득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의 핵심 전략은 ‘빅맨 중심의 전술’이었습니다. 샤킬 오닐,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과 같이 포스트업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센터를 보유하는 것이 우승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여겨졌습니다. 경기 플랜은 단순했습니다. 빅맨에게 공을 투입하여 확실한 득점을 노리고, 공격 리바운드에 적극 가담하여 세컨드 찬스 득점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흐름은 당시의 수비 규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2001년 지역방어(zone defense)가 허용되기 전까지, NBA는 ‘불법 수비(illegal defense)’ 규정을 통해 골밑에 수비수가 버티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로 인해 상대 빅맨을 상대로는 일대일 매치업이 강제되었고, 샤킬 오닐과 같이 힘과 기술을 겸비한 센터를 막는 것은 극도로 어려웠습니다. 상대 팀들은 오닐의 자유투 성공률이 낮다는 약점을 노려 의도적으로 파울을 범하는 ‘핵-어-샤크’ 전술을 통해 그를 제어하려 했는데 , 이는 당시 빅맨 중심 전술에 대한 상대 팀의 전략적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4. 정규시즌의 명승부들

1999-2000 시즌은 여러 기억에 남을 만한 명승부들을 배출했습니다.

  • 샤킬 오닐의 61점 경기: 클리퍼스를 상대로 기록한 61득점 23리바운드 경기는 시즌 최고의 개인 퍼포먼스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경기는 오닐의 막을 수 없는 힘을 증명함과 동시에, 코비와의 관계에서 잠시나마 ‘형제애’를 보여준 희귀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 득점 폭발: 빈스 카터는 피닉스 선즈를 상대로 51점을, 앨런 아이버슨은 새크라멘토 킹스를 상대로 50점을 기록하며 , 21세기 새로운 득점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습니다.  
  •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클러치 승리: 케빈 가넷을 중심으로 한 미네소타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보스턴 셀틱스 등 여러 강팀을 상대로 극적인 버저비터 승리를 거두며 , 당시 리그의 치열했던 접전 양상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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